화장품 브랜드사를 운영하는 A 대표님은 얼마 전, OEM 제조사로부터 수분크림 1만 개를 납품받았습니다. 창고 입고 당시 무작위로 몇 개를 샘플링해 확인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납품 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소비자들의 반품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크림에서 기름과 물이 완전히 분리되어 나와요", "피부 트러블이 생겼어요."
당황한 A 대표님이 제조사에 강력히 항의하며 반품과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제조사는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납품한 지 6개월이 넘었습니다. 상법 제69조에 따라 검수 및 하자 통지 기한이 지났으므로 저희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과연 A 대표님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재고 폐기 비용과 브랜드 이미지 실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사무소 완봉과 함께 철저히 준비한다면 6개월의 장벽을 넘어 제조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B2B 거래, 즉 상인 간의 매매에서 가장 까다로운 법 조항 중 하나가 바로 상법 제69조 제1항입니다.
상법 제69조(매수인의 목적물의 검사와 하자통지의무)
① 상인간의 매매에 있어서 매수인이 목적물을 수령한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검사하여야 하며 하자 또는 수량의 부족을 발견한 경우에는 즉시 매도인에게 그 통지를 발송하지 아니하면 이로 인한 계약해제, 대금감액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 매매의 목적물에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하자가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6월내에 이를 발견한 때에도 같다.
이 규정은 상거래의 신속한 해결과 매도인(제조사)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 규정입니다. 대법원 역시 검사 및 하자 통지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매수인(브랜드사)에게 지우고 있습니다(대법원 90다카28498 판결 등).
이 때문에 많은 중소 브랜드사들이 "물건 받고 6개월 지났으니 끝났다"는 제조사의 으름장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법률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칼날을 피해 갈 수 있는 강력한 방패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 전략은 계약의 본질을 다시 따져보는 것입니다. 상법 제69조는 오직 '매매(물건을 사고파는 계약)'에만 적용됩니다. 만약 제조사와의 계약이 매매가 아니라 '도급계약(일을 완성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으로 평가받는다면, 상법 제69조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주문자가 제공한 규격이나 특별한 요구에 맞춰 제작되는 제품, 즉 시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팔 수 없는 '부대체물(不代替物)'의 제작물공급계약은 매매가 아닌 도급의 성질을 강하게 띤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87다카1131 판결 등).
OEM/ODM을 통해 독자적인 제품을 위탁 생산했다면, 이를 '부대체물 제작물공급계약'으로 주장하여 상법 제69조의 6개월 제한을 원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민법상 도급인의 담보책임 기간(인도받은 날로부터 원칙적으로 1년)이 적용되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제조사가 "도급이든 매매든 어쨌든 6개월이 지나 면책된다"고 버틴다면, 대법원 2015. 6. 24. 선고 2013다522 판결을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대법원은 "상법 제69조 제1항의 하자통지 의무는 민법상 매도인의 담보책임에 대한 특칙일 뿐, 채무불이행의 일종인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는 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시하였습니다.
즉, 제조사가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하자가 발생한 상황은 단순한 '하자담보책임'을 넘어선 '채무불이행(불완전이행)'에 해당합니다.
단,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물건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넘어, "제조사의 귀책사유(과실)로 인해 불량 제품이 납품되었다"는 점을 법리적·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소송이나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말'이 아닌 '객관적 증거'로 말해야 합니다. 창고에 불량 재고를 앞에 두고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실무 대응을 정리해 드립니다.
수분크림의 유수분 분리 현상, 의류의 봉제선 미세 뜯어짐, IT 기기 내부 보드의 납땜 불량 등은 납품 당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잠재적 하자'입니다.
소송 제기 전 또는 소 제기와 동시에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을 해야 합니다.
납품받은 지 수개월이 지났더라도, 하자를 '실제로 인지한 시점'으로부터는 지체 없이 통지해야 안전합니다.
Q1. 계약서에 "납품 후 30일 이내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합격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것도 뒤집을 수 있나요?
A1. 이러한 조항을 '의제합격조항'이라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계약서상 합의는 효력을 갖지만, 하자가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잠재적 하자'였던 점, 그리고 제조사의 고의나 중과실로 발생한 하자임을 소명할 수 있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불공정 약관 법리를 적용하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Q2. 제조사가 보관을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2. 3PL 창고의 표준 온·습도 관리 대장 및 입출고 기록을 확보하여 브랜드사가 정상적인 조건에서 제품을 보관했음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보관 조건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특정 생산 로트(Lot)의 제품에서만 집중적으로 하자가 발생했다면, 이는 보관 환경이 아닌 제조 공정상 결함임을 강력히 추정할 수 있는 유력한 정황 증거가 됩니다.
Q3. 아직 잔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인데, 일단 지급을 미뤄도 되나요?
A3. 민법상 상대방의 하자 있는 이행에 대해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무작정 대금 지급을 거부하면 지연이자가 발생하거나 오히려 계약 위반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자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근거(도급의 성격 또는 불완전이행)를 담은 공식 내용증명을 먼저 발송한 뒤 대금 지급 보류 절차를 밟는 것이 안전합니다.
Q4. 소비자 반품과 브랜드 이미지 손실까지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나요?
A4. 제조사의 귀책사유가 인정된다면, 직접적인 재고 폐기 비용뿐만 아니라 소비자 반품·환불로 인한 손실, 브랜드 신뢰도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 등 예견 가능한 손해를 폭넓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손해액 산정에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가 필요하므로, 관련 매출 데이터와 클레임 접수 내역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 완봉입니다.
OEM/ODM 위탁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자 분쟁은 제조사와 브랜드사 간의 정보 비대칭이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입니다. 제조사는 기술적 전문성을 앞세워 상법 제69조를 내밀며 소규모 브랜드사를 압박하곤 합니다.
법률사무소 완봉은 OEM/ODM 하자 분쟁을 포함한 기업 간 계약 분쟁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납품받은 제품에서 뒤늦게 하자가 발견되어 대응 방법을 고민 중이시라면,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먼저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검토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법적 판단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변호사와의 개별 상담을 통해 정확한 조력을 받으시길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