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급하니까 이 기능부터 개발해 주세요. 정산은 나중에 한꺼번에 해드릴게요."
IT 외주 개발사, 건설 하도급업체, 디자인 대행사를 운영하는 대표님들이 가장 많이 듣는, 그리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원청사의 말입니다. 이 말을 믿고 밤낮없이 인력을 투입해 추가 작업을 마쳤는데, 막상 정산할 때가 되면 태도가 180도 바뀝니다.
"우리가 언제 그런 지시를 했습니까?"
"그건 원래 계약 범위에 포함된 거 아니었나요?"
"추가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대금을 달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서면이 없다는 이유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추가 대금 정산을 거부당할 때,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프리랜서 대표님들은 소송 비용과 시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도급법에는 이렇게 발뺌하는 원청사를 상대로 소송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전에 확실한 대금 청구 증거를 설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있습니다.
오늘은 계약서가 없는 상태에서 정당한 추가 공사 및 개발 대금을 확보하기 위한 '수급사업자의 서면확인제도' 실전 활용법을 상세히 안내해 드립니다.
본론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원청사가 추가 공사나 추가 개발을 지시하면서 계약서를 써주지 않은 행위는 하도급법 제3조(서면의 발급·보존 등)를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 행위입니다.
하도급법상 원청사는 수급사업자(하도급업체)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반드시 위탁 내용과 하도급대금이 적힌 서면을 발급해야 합니다. 이는 추가 작업이나 설계 변경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많은 원청사가 "합의가 안 돼서 계약서를 못 썼으니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법원 판례와 공정위 의결례는 '시공 과정에서 추가·변경된 사실이 입증되었음에도 당사자 간 다툼이 있다는 이유로 변경계약서나 정산서를 발급하지 않은 행위'를 명백한 서면 미발급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계약서가 없어서 돈을 못 준다는 원청사의 말은 법적 근거가 없는 변명에 불과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법을 위반했음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소송을 제기하거나 공정위에 신고하려면 "원청사가 나에게 이 일을 이만큼의 돈을 주기로 하고 시켰다"는 점을 내가 증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는 구체적인 단가나 정산 합의 내용을 완벽히 입증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하도급법 제3조 제6항에 규정된 '수급사업자의 서면확인제도(하도급계약의 추정)'입니다.
💡 수급사업자 서면확인제도 (하도급법 제3조 제6항~제8항)
원청사가 법에서 정한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경우, 하도급업체가 위탁받은 작업 내용, 하도급대금, 위탁 일시 등을 적은 서면을 원청사에게 보내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요청을 받은 원청사는 15일 이내에 인정 여부를 서면으로 답해야 하며, 답하지 않을 경우 하도급업체가 보낸 내용대로 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법적 추정을 받게 됩니다.
이 제도는 계약서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던 수급사업자에게 스스로 계약의 실체를 문서화하고, 원청사에 답변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법적 서면을 보내기 전, 그동안 축적된 정황 증거들을 한곳에 모으고 객관적인 수치로 정리해야 합니다.
- 구두 지시 정황: 원청사 담당자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이메일, 통화 녹취록, 회의록
- 실제 투입 내역: 추가 작업에 참여한 인력의 투입 공수(M/D, Man-Day) 기록, 업무 일지, 현장 사진, 소스코드 커밋 기록 등
- 산출물 증빙: 추가 작업을 통해 완성되어 원청사에 납품된 결과물(디자인 시안, 개발 빌드 파일, 검수 요청 메일 등)
모아둔 정황을 바탕으로 하도급거래공정화지침의 표준 양식인 '위탁내용 확인요청서'를 작성합니다. 내용은 최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재해야 합니다.
- 잘못된 예시: "추가로 지시하신 웹페이지 개편 작업에 대한 대금 3,000만 원을 청구합니다."
- 올바른 예시: "원청사 담당자 홍길동 과장의 구두 지시(2026년 3월 10일 자 카카오톡 대화 내용 첨부)에 따라, 당초 계약 범위를 벗어난 '결제 모듈 다변화 및 관리자 페이지 추가 개발'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해당 작업에는 개발 인력 O명(총 OO M/D)이 투입되었으며, 하도급법 제3조 제6항에 의거하여 이에 상응하는 추가 개발 대금 32,500,000원(부가세 별도)의 위탁이 있었음을 확인 요청합니다."
하도급법 제3조 제8항에 따라, 이 통지는 반드시 내용증명 우편 또는 수신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송해야 합니다.
⚠️ 주의: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메시지로 발송한 것은 법적인 서면확인 요청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체국 내용증명을 이용해 원청사의 공식 본사 주소와 대표이사 앞으로 발송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
원청사가 내용증명을 수령한 날부터 15일 동안의 대응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처합니다.
시나리오 A: 원청사가 15일 동안 아무 답도 하지 않은 경우 (침묵)
법적으로 대표님이 통지한 내용 그대로 위탁 계약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청사는 이제 "그런 지시를 내린 적 없다"는 주장을 법원에서 뒤집기 극히 어려워집니다. 이 추정력을 바탕으로 민사소송(지급명령 신청 등)이나 공정위 신고를 진행하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B: 원청사가 '부인 서면'을 보낸 경우 (반박)
원청사가 "그런 계약을 맺은 적 없다"고 서면 회신을 보냈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청사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부인 서면에 구체적인 반박 근거를 적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추가 작업은 맞으나 금액이 과다하다"거나 "일부만 지시했다"는 식으로 답변하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추가 작업 지시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는 증거가 됩니다. 이 모순점을 활용해 정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Q1. 추가 대금 액수를 미리 합의하지 않았는데, 확인요청서에 얼마로 적어야 하나요?
A. 동종 업계의 객관적인 단가나 실제 투입된 인력의 공수(M/D)를 기준으로 산정한 합리적인 정산 금액을 기재하시면 됩니다. 투입 공수 산출 근거(노임단가표, 개발자 등급 증빙 등)를 함께 첨부하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향후 소송에서도 감정을 통해 인정받기 수월합니다.
Q2. 원청사가 내용증명을 받고 카카오톡이나 전화로 "인정 못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적법한 회신인가요?
A. 아닙니다. 하도급법 제3조 제7항 및 제8항에 따라, 원청사의 부인 의사표시 역시 반드시 서면으로 수급사업자에게 도달해야 합니다. 구두나 문자메시지, 일반 이메일로만 반박하고 15일을 넘겼다면 법적으로 적법한 회신을 하지 않은 것이므로, 대표님이 통지한 내용대로 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Q3. 추가 작업이 끝난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서면확인요청서를 보낼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하도급법상 서면확인요청의 발송 시기에 별도의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황 증거가 흩어질 수 있으므로, 원청사가 정산을 거부하거나 대금 지급을 미루는 징후가 보이는 즉시 신속하게 발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4. 추정력이 생기면 바로 원청사 통장을 가압류하거나 강제집행할 수 있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도급계약의 추정'은 계약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법적 효력일 뿐, 그 자체로 법원 판결문과 같은 집행력을 갖지는 않습니다. 이 추정력을 기초 증거로 삼아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지급명령을 신청해 집행권원을 얻어야 강제집행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 증거가 확보되면 소송 승소 확률이 크게 높아지고 소송 기간도 단축됩니다.
Q5. 서면확인제도는 어떤 업종에 적용되나요?
A. 하도급법은 제조, 건설, 용역(IT 개발·디자인 등), 수리 위탁 거래에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원청사가 중소기업이더라도 수급사업자보다 규모가 크다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업종과 관계없이 활용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대표님이 "원청사와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혹은 "설마 대기업인데 돈을 안 주겠어?"라는 마음에 서면 없이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표면화된 시점에서는 감정적 호소나 기다리는 태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원청사가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합의를 피하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하도급법이 부여한 '수급사업자 서면확인제도'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 서면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정황 증거와 결합해 발송하느냐에 따라 정산 협상의 주도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법적 판단과 대응 전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면 발송 전 반드시 하도급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서면 문구와 첨부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법률사무소 완봉에서는 외주 대금 미지급, 서면 미교부, 추가 공사대금 청구 등 하도급 분쟁 전반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싶으신 대표님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