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 완봉입니다.
여러 개의 법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연쇄 창업가나 중소기업 대표님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자회사나 자금난에 처한 자매회사 통장으로 모회사의 여유 자금을 수억 원씩 덜컥 송금해두신 경우입니다.
"어차피 두 회사 모두 내가 지분 100%를 가진 '내 회사'인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시곤 합니다. 내 왼쪽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오른쪽 주머니로 옮긴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상법과 형법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대표이사 한 사람이 지분 전부를 보유한 1인 법인이라 할지라도, 법인격을 갖춘 순간 그 회사의 자산은 대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회사 채권자와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공동의 책임재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준비 없이 행해진 계열사 간 자금 대여는 한순간에 대표이사를 전과자로 만드는 업무상 배임죄와 세무조사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송금 버튼을 누르기 전, 반드시 체크해야 할 법적 쟁점과 예방 조치를 짚어드립니다.
많은 대표님이 오해하시는 출발점은 바로 법인의 본질입니다. 개인사업자는 사업체 자금과 개인 자금이 섞여도 세금 문제(가지급금 인정이자 등)만 정산하면 형사 처벌까지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식회사는 다릅니다. 주식회사는 법이 인격을 부여한 독립된 주체입니다. 지분을 100% 소유한 1인 주주이자 대표이사라 하더라도, 회사와 대표이사는 법률적으로 엄연히 별개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을 적법한 절차 없이 계열사에 빌려주거나 이전하는 행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 즉 업무상 배임죄 또는 업무상 횡령죄의 요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VC)가 진행하는 회계 감사나 세무조사에서 가장 먼저, 가장 엄격하게 잡아내는 항목이 바로 이 '계열사 간 임의 자금 거래'입니다.
상법 제398조는 이사 등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를 '자기거래'로 규정하고 엄격히 제한합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자신이나 자신이 지배하는 다른 주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상법 제398조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
이사 등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하여는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하고,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
규제 대상인 '이사 등'에는 대표이사는 물론, 대표이사의 배우자·직계존비속, 그리고 이들이 발행주식 총수의 50% 이상을 보유한 계열회사까지 포함됩니다.
A 법인의 대표이사 김 대표가 B 법인의 대표를 겸임하거나 과반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면, A 법인이 B 법인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전형적인 상법 제398조의 자기거래입니다. 반드시 송금 전에 A 법인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일단 송금하고 다음 달 이사회 때 소급해서 결의서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실무자들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후 승인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대법원은 개정 상법 제398조의 취지를 해석하면서, 이사 등과 회사 간 거래에 대한 사후 추인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21다291712 판결).
송금 전에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 결의를 얻지 않았다면, 해당 자금 대여 거래는 법률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주주대표소송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은 물론, 형사 배임 혐의를 벗기도 매우 어려워집니다.
"이사회 소집해서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도 받았고 의사록도 공증받아 뒀으니 완전히 안전하겠죠?"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상법상 이사회 승인 절차를 밟았다고 해서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 책임까지 자동으로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를 거쳤더라도 대여를 받는 계열회사가 사실상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만연히 대여해 주었다면 배임죄가 성립합니다.
"회사의 이사 등이 타인에게 회사 자금을 대여함에 있어 그 타인이 이미 채무변제능력을 상실하여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정을 충분히 알면서 이에 나아갔거나, 충분한 담보를 제공받는 등 합리적인 채권회수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대여해 주었다면… 그 타인이 자금지원 회사의 계열회사라 하여 달라지지 않는다."
(대법원 99도4923 판결 등 다수)
대법원 판례(2017. 11. 9. 선고 2015도12633 판결)가 제시하는 계열사 지원이 배임죄가 되지 않기 위한 핵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4가지 요건을 서류와 숫자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경영적 판단이었다"는 호소는 법정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사법 리스크와 세무 리스크를 동시에 방어하기 위한 실무 지침을 정리해 드립니다.
Q1. 이사가 대표 본인 1명뿐인 소규모 법인인데, 이사회가 없으니 그냥 송금해도 되나요?
자본금 10억 원 미만의 소규모 회사는 이사를 1~2인만 둘 수 있어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사회가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법 제383조 제4항에 따라 이사회가 없는 소규모 법인의 자기거래는 주주총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회 의사록 대신 적법한 주주총회 의사록을 반드시 남겨두셔야 합니다.
Q2. 일주일만 쓰고 이자까지 쳐서 바로 돌려주었습니다. 이것도 배임이나 횡령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대법원은 단기간 내에 상환할 의사가 있었고 실제로 원금과 이자를 모두 돌려줬더라도, 적법한 절차 없이 자금을 인출하여 대여한 행위 자체로 이미 불법영득의사(남의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하려는 의사)가 인정되어 횡령죄 또는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사후 변제는 감형 사유가 될 수는 있어도 무죄 사유가 되지 않으므로 주의하셔야 합니다.
Q3. 세무서에서 가지급금 지적만 안 나오면 형사 배임죄도 피해 갈 수 있나요?
세무상 가지급금 인정이자를 성실히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했더라도, 형사상 업무상 배임죄는 별개로 성립합니다. 세법은 '사후적인 세액 정산'을 목적으로 하지만, 형법은 '거래 당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세무처리를 완벽히 해둔 거래에 대해 소수 주주나 투자사, 퇴사한 임직원의 고발로 배임 수사가 개시되는 사례가 실제로 빈번합니다.
Q4. 지주회사와 완전자회사(지분 100%) 간 자금 거래도 상법 제398조가 적용되나요?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는 완전자회사 관계라도 법인격이 별개인 이상 상법 제398조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대법원은 완전자회사에 대한 지원 행위는 모회사의 기업 가치 제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아, 자매회사 간 거래보다 경영판단의 재량을 조금 더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회 승인과 적정 이자 설정 등 기본적인 절차는 동일하게 밟아야 안전합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열정적으로 달리다 보면 '회사의 돈'과 '내 돈'의 법적 경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동업자와의 갈등, 기관 투자자의 사후 감사, 혹은 경쟁사의 고발이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빌미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계열사 간 자금 대여'입니다.
사후에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고 나서 수습하려면 수십 배의 노력과 비용이 들며, 최악의 경우 경영권 박탈이나 구속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자금 집행 전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리스크입니다.
법률사무소 완봉에서는 계열사 간 자금 융통, 자산 거래, 담보 제공 등 기업 법무 컴플라이언스 전반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송금 전에 먼저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2026년 6월 18일 기준의 법령 및 판례를 바탕으로 작성된 일반적인 정보 제공용 칼럼이며, 구체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공식적인 법률 자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