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것도 잠시, 임대차 계약 종료를 앞둔 집주인 A씨는 생각지도 못한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어느 날 고인의 유족이라며 자신을 친자녀라고 밝힌 사람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보증금은 제 계좌로 송금해 주세요." 하지만 며칠 뒤, 임차주택에 함께 살고 있던 사실혼 배우자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옵니다. "우리가 혼인신고만 안 했을 뿐이지 5년을 부부로 살았습니다. 제 피땀이 섞인 돈이니 보증금은 제게 주셔야 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습니다. "만약 저쪽 사람에게 보증금을 내주면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으름장까지 놓는 상황입니다. 집주인은 과연 누구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이 분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혼인신고를 안 한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다"고 보기 쉽습니다. 실제로 우리 민법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일반적인 재산 상속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 제9조에는 특별한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세입자의 사망으로 남겨진 사실혼 배우자가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주택 임차권의 승계' 규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주임법 제9조에 따른 승계 구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에서 임대인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두 번째 경우입니다. 고인과 함께 살았던 사실혼 배우자, 그리고 따로 살던 친자녀가 보증금에 대한 권리를 공동으로 갖게 되는 상황입니다.
갈등 상황에서 마음이 약해지거나 한쪽의 완강한 태도에 밀려 성급하게 판단했다가는 억울하게 큰돈을 날릴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족이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제시하며 "우리가 법정 상속인"이라고 주장하면, 법률 지식이 부족한 집주인은 그들에게 전액을 입금해 주곤 합니다. 하지만 주임법 제9조 제2항에 따라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공동 승계권이 인정되는 사안이라면, 이는 일부 무권리자에게 변제한 셈이 됩니다. 추후 사실혼 배우자가 "내 지분만큼의 보증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면 집주인은 그 지분만큼의 돈을 다시 내주어야 합니다.
"일단 우리에게 보증금을 주시면, 그 사람과의 합의는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각서도 써 드릴게요." 유족들이 제안하는 이 각서는 실무적으로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유족과 집주인 사이의 사적 계약일 뿐, 제3자인 사실혼 배우자의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혼 배우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집주인은 패소할 가능성이 높고, 각서를 근거로 유족에게 돈을 돌려받으려면 또 다른 소송을 벌여야 하는 복잡한 분쟁에 빠지게 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비율로 줘야 할지" 집주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설 때 법이 제공하는 구제책이 바로 '채권자 불확지 변제공탁(민법 제487조 후단)' 입니다.
채무자(집주인)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나 법률적 다툼 때문에 "과실 없이 채권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일 때, 보증금을 법원에 맡김으로써 채무를 면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사실혼 배우자와 2촌 이내 친족의 공동승계 비율에 관해서는 명확한 대법원 판례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실무상 다툼이 치열합니다. 집주인이 자의적으로 비율을 나눠 반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공탁이 가장 확실한 해법입니다.
공탁은 요건과 양식이 엄격하여 사소한 기재 실수만으로도 법원에서 보정명령이 나오거나 기각될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시기 바랍니다.
집주인이 "과실 없이 채권자를 알 수 없어 공탁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공탁자 주소지 또는 채무 이행지(임대차 목적물 소재지 혹은 집주인 주소지) 관할 법원 공탁소에 직접 방문하거나, '대한민국 법원 전자공탁' 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공탁관의 심사를 거쳐 수리 결정이 내려지면 지정 계좌로 보증금 전액을 납입합니다. 전자공탁을 활용하면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탁이 완료되면 법원은 피공탁자들에게 공탁 통지서를 발송합니다. 유족의 주소를 모르는 경우에는 주소불명으로 제출한 뒤, 법원의 주소보정명령을 받아 주민등록초본을 합법적으로 발급받아 보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주임법 제9조 제1항에 따르면 상속인이 없는 경우 사실혼 배우자가 단독 승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의 실체를 제3자인 집주인이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추후 숨겨진 상속인이 나타나 "단순한 동거인이었을 뿐"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면 집주인이 난처해집니다. 사실혼 관계를 증명할 법원 판결문 등이 없다면 이 경우에도 공탁을 진행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보증금을 공탁하더라도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지 않으면 완전한 해결이 아닙니다.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와 임차인의 주택 인도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공탁 시 "임차주택을 인도받는 것을 조건으로 공탁금을 찾아갈 수 있다"는 반대급부 조건을 붙이면, 사실혼 배우자는 퇴거 사실을 증명해야만 돈을 수령할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명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지대, 송달료 등 소액의 절차 비용은 공탁자인 집주인이 먼저 납부해야 합니다. 다만 이는 집주인의 귀책 사유 없이 발생한 비용이므로, 공탁금에서 해당 비용을 공제하거나 당사자들에게 청구할 여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이중으로 물어내야 할 리스크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비용입니다.
유족(상속인)들 사이의 합의서는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와 무관합니다. 사실혼 배우자가 그 합의에 명시적으로 동의하고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합의서에 직접 날인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혼 배우자의 승계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갈등의 당사자 전원이 포함된 합의가 아닌 이상, 보증금을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임차인의 사망은 집주인에게도 매우 당혹스럽고 심리적으로 부담이 큰 사건입니다. 슬픔을 수습하기도 전에 유족과 동거인의 보증금 다툼 사이에 끼어 고통받고 계신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법률사무소 완봉에서는 임차인 사망으로 인한 보증금 반환 분쟁, 채권자 불확지 공탁, 명도 절차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류 작성부터 법원 보정 명령 대응까지 절차 전반을 함께 진행해 드립니다.